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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자 유일한 박사


지난주일 교회 예배를 마치고 황급히 유일한 박사 다큐프라임과 '허스토리'가 상영 될 마운틴뷰 센츄리 극장을 찾아갔다. 도착하고 보니 낯익은 얼굴이 많이 띄었다. 영화 상영에 앞서 간단한 행사가 있었다. 유일한 박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EBS 허성호 이승주 두 PD가 참석해 생동감을 더해 주었다.

9살에 단신 도미

유일한 박사 이름은 잘 알려졌지만, 그에 관한 구체적인 독립운동 이야기는 흔치 않았다. 그는 평안도에서 매우 성공한 집안의 5남3녀 중 장남으로 1895년에 태어났다. 부친이 평양 감리교에서 유학생을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9살난 아들을 단신으로 미국 유학길에 보냈다. 어린아이를 보낸 부모님의 결단도 대단했지만 두려움 없이 도미한 유일한은 오늘날 가정에서 과보호로 키워진 우리 2세들에게도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그 당시 유학생 인솔 단장인 독립운동가 박용만의 도움으로 미국의 한 기독교 집안에 입양되면서 미국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한인 헤이스팅스 군사학교에도 갔고, 독립을 위한 항일집회에서 연설도 했다. 그는 학교를 마치고 통조림 사업에 성공하면서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기에 충분했지만, 그의 마음속엔 조선의 독립이 언제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일제강점기 기간에 자진 귀국해 들어나지 않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정치인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기업가로 참가한 것이다.

국민이 건강해야

그는 ‘국민이 건강해야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제약회사 ‘유한양행’를 시작했다. 다큐를 보면 그는 조선의 독립에 관한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본 것이다. 오랜 기간 미국에서 살았고, 미국이라는 큰 나라가 일본을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강한 신념이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를 위대한 인물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독립 이후를 생각했다는 점이다. 독립은 시간이 지나면 찾아오는 것이고 그다음 2천만 조선인이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고민이 컸다. 그래서 그는 ‘건강한 국민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좋은 약을 만들어 국민을 건강하게 만들면 국가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를 다른 독립운동가와 다르게 분류되는 이유가 바로 ‘민생과 부국’ 주장이다. 그는 독립이 어느 정파에 속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정치보다 국민이 배고프지 않고 나라가 부강하게 되어 또다시 침략을 당해서 안된다는 그런 선각자적인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진짜 애국자는 국민의 배고픔을 알고 그렇게 안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애국자 아니겠나.

모든 재산 사회에 기부

그가 훌륭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금부터 50년 전에 실천했다는 점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 위하는 현대 사회인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내가 번 돈은 내 돈이고, 내가 마음대로 쓰고, 내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당연시 되는 시대에 그는 역행을 한 것이다. 가족들의 반발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인품으로 미루어 보아 가족들도 환영했을 것이다. 다큐에 등장하는 유일한 박사의 유일한 손녀딸 유일링씨는 자신의 가족사에 상속은 없었다고 단호히 말을 했다. 가족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그의 외동 손녀를 통해서 유일한 박사 가문이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1971년에 사망한 유일한 박사(76세)가 아직 한국 사회에 귀감이 되는 이유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그가 이룬 부도 결국은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선각자였기 때문이다.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돈이고, 상속이다. 내 자식이 고생할까바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유일한 박사였고,우리가 아직도 그를 흠모하고 기억하려는 이유 아닐까.

미국판 유일한 박사

유일한 박사 다큐를 만든 허성호 PD는 인사말에서 오늘날 유일한 박사에 가장 가까운 인물 중에 한 분으로 김한일 박사를 거명했다. 허 PD의 가치관을 보여준 대목이기도 하다. 김한일 박사는 매우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 치과의사로 활동하면서 부모님의 동포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부모님의 이름으로 ‘김진덕정경식재단’을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구글의 독도 표기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으로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구글에 전달 및 항의하고, 일본군위안부의 피해를 알리고 지구촌에서 성매매 근절을 위한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도시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제2차 대전 중 일본군의 피해를 입은13개 커뮤니티와 연합해서 ‘위안부 기림비’ 세우고작년에는 서울 남산에 ‘위안부 자매비’를 세운 것이다. 이 두가지 큰 일에 북가주 지역 한인들이 함께 동참하고 열띤 응원을 했다. 이제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를 모르는 한국인들이 없고 ‘위안부기림비’는 북가주 한인사회의 동포들의 단결과 화합울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와 베이지역 한인들의 위신과 품위를 힘껏 올린 일이 되었다. 미주 대륙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한인단체가 바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범했다. 2020년 경자년에는 동포사회가 더욱 화목하고 양보하는 공동체가 되길 기원한다. hdnewsu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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