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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사람들은 마음에 아픈 상처를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한세상을 산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그 아픔을 달래는 눈물과 한숨이 있을것이다. 마음의 상처란 심신에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을 때 마음에 생기는 극심한 고통이다. 세계인구의 반 이상이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산다고 한다. 마음의 상처는 몸에 상처를 입은 상처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더러는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장기적인 정취(情趣)가 된다. 심할 때는 심리적으로 공포, 불안, 수치심 또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정신적인 장애를 남기는 외상(外傷) 혹은 트라우마(Trauma)라고 부르는 깊은 상처도 있다.

마음에 오랫동안 남는 상처는(큰 트라우마) 전쟁이나 역병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생긴다. 역사적으로 파란곡절이 빈번한 나라에서 파란만장했던 사회의 후손들인 오늘의 우리들에게 마음의 상처는 남다르다.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정취(Sentiment)는 자식을 앞세워 보낼 때라고 한다. 그다음은 아마도 가족들의 분산이 아닌가 싶다. 나의 장모님은 나이 40에 인민군에게 납치된 남편을 기다리던 그 무수한 밤, 남몰래 흘린 그 많은 눈물은 반세기가 넘도록 매해 봄비가 되어 찾아온다고 했다. 마음의 상처는 일반적으로 감정이 여린 어린이들이나 부녀자들, 사회적으로 소외된 시민들과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가는 노년층이 더욱더 민감하다고 한다. 더러는 같은 말이라도 목소리가 높으면 감당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거나 노여움이 되고 슬픔이 된다. 눈물이 유난히 많았던 나의 유년 시절도 지금 생각해보면, 조실부모하여 보호자가 없는 환경에서 고함마저도 감당할 수 없는 나약한 탓이 아니었겠는가 하고 변명해 본다.

한국은 한미동맹의 덕택으로 지난 70여 년간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한 탓으로 오늘과 같이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세계 28위(인구 당 GDP, KOSTA, 2018)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행복지수(World Happiness Index)는 여전히 후진국들이 겪는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계 156개국 중 54위(2019)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모두 선망하는 행복지수는 삶의 만족에 따르며 삶의 기쁨은 정신적인 건강에 의존된다. 마음에 오래 머무는 상처는 정신생활을 혼란하게 하고 내적 조화를 파괴하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 사회는 마음에 상처를 주는 요물(妖物)들이 범람하고 있다는 이유이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큰 도시일수록 혹은 무질서한 사회일수록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된다. 사회적인 요물 중에는 특히 소외된 사람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갑 질적인’ 언행도 있다. 큰 도시의 학교에서는 어린이들까지 패거리가 되어 다툼하거나, 더러는 교우들로부터 왕따를 시켜 반복해서 놀림을 주는 때도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교통사고, 이혼, 자살, 분쟁 등들도 우리의 정신건강에 해를 주는 요물들이다. 그 사회악들은 하나같이 인간 역사와 함께해오는 동반자들이다. 그러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것은 그 요물들 자체가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다툼으로 서로가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는데 있다. 예로서 2014년 수학여행 2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락선 세월호의 침몰도 한국사회의 그 많은 교통사고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 참사도 다툼의 요물로서 정치인들의 반목 도구가 되어오다가, 2020년의 총선에서는 막말 다툼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억울(抑鬱)함을 당할 때 분노와 함께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된다. 억울함이란 아무런 잘못도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는 경우이다. 세상에는 누명(False)을 쓰고 투옥 생활을 하는 억울한 법적 사례도 무수하다.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하는 중상(中傷, Strander)을 하는가 하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왜곡하거나 혹은 속임수를 만들어 누명을 씌워 매장하는 모략(Stratagem)도 있다.

이 두 종류의 거짓(중상과 모략)이 간교의‘고자질’ 도구로써 사용되면 왕정 시대의 임금님과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들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까지도 해직을 당한다. 사람들은 이 억울한 중상모략을 역모(逆謀, Conspiracy)라고 부른다. 방송작가 김남의 저서(조선왕조실록, 2015)에 따르면 조선왕조 5백 년은 역모로 날이 새고 날이 져서, 매해 두 번꼴로 그 수를 합하면 1천 회가넘는다고 했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역모는 아마도‘남이(南怡, 1441-68)장군의 옥(獄)’으로 알려진 억울한 참사가 아닌가 한다. 한때천재무장(武將)으로도 알려진 그는 여진(女眞) 정벌에 공을 세움으로써 세조의 총애를 얻어 27세의 나이로 1476년에 병조판서가 되었지만, 조정을 감싸고 있는 구세력(신숙주,한명희)을 대표한 유자광(柳子光)의 고자질 때문에 팔과 다리를 각각 다른 수레에 매여 수족을 찢어서 죽이는 거열형(車裂刑)을 당했다. 같은 방법으로 그의 어머니도 다음날 처형 되었고, 딸은 한명회(韓明澮)의 노비가 되었다. 어쩌다 떠나온 나의 조국 한국 사회는 현재 우한 폐렴,경제 불황 그리고 4.15총선의 후유증으로 유난스럽게 소란한 것 같다. 이 와중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상처의 요물들이 정치화된다면 1597년 조선의 선조 때 이순신(1545-98)이 억울하게 상처를 입은 것 같이 옥살이와 백의종군을 다시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면 세월호 사고와 같이 정치화되면, 7년이 아닌 더 먼 훗날 또 다른 제14대 육군기무사령관 이재수(1958-2018) 육군 중장의 마음의 상처를 죽음으로 대신한 비극을 보게 될 것이다.

상처 난 그 아픈 마음을 세상의 그 무엇으로 치유가 되겠는가? 그래서 나는 예방책으로 조선의 제10대 왕 연산군(1476-1506)의 신언패(愼言牌)를 정치인들 시작으로 목에 걸고 관공서를 출입하도록 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마음의 상처는 노란색 리본이나 촛불시위로 간단하게 치유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시언 패의 말(입은 화를 초래하는 문이고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 고로 입을 다물고 혀를 놀리지 않고 있으면 가는 곳마다 편안하리라)은 하늘의 두려움 없이 중상모략으로 고자질을 좋아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더는 큰 가르침은 없을듯하다. (저자:어른들을 위한 인성교육,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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