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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돌아온다


2년 전 이 지면을 통하여 미국 이민사를 쓴 로버트 파커 (Robert Parker)의 책을 소개한 일이 있었다.

그 내용을 간단히 다시 요약 한다면 그 첫째는 접촉(contact) 두번째로는 경쟁(Competition) 셋째는 적응(Adaptation) 넷째는 동화(Mixed) 과정을 거쳐서 미국화 된다고 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필자가 3가지로 요약해 보면 첫째는 동족 간의 군거행활을 한다는것 두번째로는 과정을 각자의 직업에 따라 분산한다는 것, 세번째로는 군거지로 제집합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이 3단계를 우리 한인들의 발자취를 예를 들어 증명해 보려고 한다. 우리 한인들이 새크라멘토에 정착하게된 시기는 1965년도부터 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이곳에는 한인 70-80명이 거주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은 이두섭 목사, 강명규 태권도 교관 그리고 박만기 유학생 정몽환씨 등이었다. 그 후 70년도부터 미군부대 가족들과 기타 이민자들이 모여 약2천명 정도로 증가된다. 당시 한인들이 정착한 지역이 볼섬 블르버드, (Folsom Blvd.) 로즈먼트 지역 (Rosemont) 좀 더 나아가서 렌초코도바 (Rancho Cordova) 지역으로 넓어졌다. 한인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다운타운이 가깝다는것, 환경적으로 안전된 지역, 교통의 중심지, 다민족의 중산층이 거주한다는 잇점 때문이었다. 80년대 접어들면서 한인 수는 만명에 육박하는 급속한 증가를 가증시킨 이유는 미국 경제호황으로 많은 노동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민 증가와 더불어 우리 한인들도 이곳 사정에 익숙해지고 언어 능력도 향상되고 기술습득이 높아짐에 따라 이 지역을 떠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렇게 집합과 분산하는 과정을 통하여 2,000년도에 접어 들면서 은퇴하는 한인 수가 늘면서 다시 한인타운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현재 한인타운 지역에는 3개의 은퇴 노인 아파트가 있는데 많은 노인들이 그 곳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계속하여 한인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 이유는 몇가지로 분석하면 첫째로 한인들의 식재료를 취급하는 식품점이 있다는 것, 두번째로는 대형 교회가 밀집되어 있다는 것, 세번째로는 한인봉사 단체인 한인회, 교육 문화회관, 노인회와 같은 편의시설이 있다는 잇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인들 끼리 쉽게 모여 고향의 향수를 달랠 수도 있고 지나간 이민생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동질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새크라멘토 지역에는 약8천여 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다. 우리 한인들이 이곳에 정착한지도 50년이 넘었다. 그 반세기 동안 한인들의 생활은 여유와 안전을 가져왔으나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사의 의식을 잊고 살았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땅에 굳건히 세울 민족의 얼을 심는 일을 해야한다. 그 과제는 바로 우리 2세들이 미주류사회의 주최가 될 수 있도록 키우는 일, 그리고 한국인의 얼을 심는 교육의 장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인이 이민사를 쓸 자료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2010년 새크라멘토 노인회에서는 “1985년부터 2010년 25년 발자취”노인회 연혁을 만들었다. 지금부터라도 한인회 전 현직 회장들이 앞장서서 우리 역사 기록서를 만들어야 한다. (참조 2)

이런 일들은 우리 이민 1세들이 반드시 만들어 놓아야할 2세 교과서와 같이 만든 이민 2백년사를 보면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늦었지만 이 사업은 꼭해야 한다. 그것이 뿌리 교육이고 정체성 교육이고 정체성 교육의 산물이다.

그러면 끝으로 참고로 미국이민 역사를 상식적으로 요약해 보자.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620년 메이플라워 102명 청교도 탄압으로 이주가 시작되었다. 1700 년부터 프랑스, 이태리, 독일인 등 유럽인들 다수가 이민 오게되었다. 1720년경 대서양을 통하여 이주한 유럽인들은 미국 동부 도시건설과 항만(뉴욕) 건설에 투입했고 1860년 태평양 쪽으로는 일본, 중국인들이 다수 유입되어 대륙횡단 철도 건설에 투입됐다. 그 후 중국인들은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다수 거주했고 일본인들은 오클랜드 지역 동남쪽, 이태리인들은 동쪽 해안가에 정착하여 수산업에 많은 사람들이 종사했다.

새크라멘토는 1848년 금광이 발견되면서 급격한 인구 증가가 되었다. 1939년 세계2차 대전이 나자 미국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현재 금문교 북쪽 골짜기로 강제 이주시키고 일본인들은 새크라멘토에서 50마일 떨어진 루머스(Loomus) 지역에 집단 수용 시설을 만들어 놓고 감금시켰다. 1945년 전쟁이 끝나자 자유를 얻었다. 일본인들은 새크라멘토 서쪽지역 그린해븐 (Green Haven) 지역에 단체 이주하여 생활터전을 마련했다. 현재 루머스에는 당시 수용소 시절에 시설물 재료 다수가 전시되어 있다. 중국인들은 현재 다운타운에 다시 정착했다.

현재 재크라멘토 지역에는 약10만 명의 아시안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참조 1) 한인 8천명 근거 교회 30곳, 교인 200명 평균 6천명, 비교인 2천명 합계 8천명 (필자 추산)

(참조 2) 노인회 연혁은 2010년 노인회장 정의석, 자료제공 서양균, 편집 강현진, 출판 주간현대

김동열 대표 협력으로 만들어짐.

사진 한인노인회 1985-2010년 (25년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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