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손화영 국악컬럼

살면서 지키지 못한 오래된 약속이 있다. 참으로 그리운 분과의 약속인데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5월 연주회를 앞두고 불쑥 생각이 났다. 한국 전통 음악은 궁중음악으로 불리는 정악과 민속 음악으로 나눈다. 흔히 사극과 같은 드라마에서 접하는 민요나 산조, 판소리와 같은 음악은 민간에서 발생한 민속 음악이며 정악은 조선 초기에 정립하여 계승된 궁중음악이다. 정악(正樂)은 문자 그대로 바른 음악으로 아정하고, 단정하다. 연주자는 감정 표현을 절제하고 무심히 흐르는 듯 자연과 동양의 정신을 담아 연주한다.

서울대는 가야금 전공으로 입학을 하면 일학년은 선화라는 호를 쓰시는 김정자 교수님께 필수로 정악을 배우고, 이후 학년이 올라가면 자신이 공부하는 류파에 따라 다른 교수님이나 외래 교수님께 사사를 하였다. 이렇게 모든 서울대의 가야금 전공자들을 제외하고서도 한국에서 김정자 교수님께 정악을 사사한 가야금 연주자는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정악의 대가, 최고의 명인 김정자 교수님은 평생을 정악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힘썼고 2007년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옥조근정훈장을 받으셨다. 저마다 교수님과의 사연이 있겠지만 단아하고 절제된 고도의 경지의 곡을 연주하는 교수님은 단아한 겉모습과는 별개로 내게는 참으로 화통한 대장부 같은 분이었다.

교수님과 처음 만난 당시의 나는 이른 나이에 가야금을 시작해 틀에 박힌 모범생 역할만을 하다 갓 성인이 되어서 하고 싶은게 너무나 많은 철부지였다. 그 중 외모의 일탈로 말하자면 머리를 밝게 물들이고 교수님이 질색하시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손톱은 검게 칠해 레슨 시간에 들어가곤 하여 레슨 시간은 항상 단정한 용모에 관한 훈계를 듣는 것으로 시작하기 일쑤였다. 당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망아지 같은 녀석 때문에 교수님이 꽤 고생하셨던 것은 분명하다.

94년 봄, 음대의 교수 휴게실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국악과 학생 몇몇이 문밖에서 귀를 대고 엿듣는 것을 보아선 우리 과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음이 분명하였다.

“내 제자...” 문밖으로 들리는 말 중 지나가던 내가 들은 말은 이 단어가 고작이었다. 문이 열리고 벌겋게 상기된 얼굴의 김정자 교수님이 성큼성큼 걸어 나오시며 복도를 지나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내 손목을 낚아채셨다. “차 마시러 가자.” 국화차를 몇 잔이나 마실 동안 교수님은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다만, 국화차가 몸에 어떤 효능이 있는지, 옛날 왕들이 국화잎을 어떻게 썼다든지 하는 말씀뿐이었다. 한참 후에야 활짝 웃으시며 약간은 과한 몸짓으로 날 안심시키듯 말씀하셨다.

“마음고생 많았지? 내 제자는 아무도 못 건드려.”

교수님의 부재중 내게 생긴 지도교수가 바뀔뻔한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교수님은 교수 휴게실에 나를 데려가 함께 차를 마시고, 교수 식당에 맛있는 점심 메뉴가 나오는 날엔 한참을 날 찾아서 데려가기도 하셨다. 레슨 시간은 교수님의 인생 이야기로 한 시간씩 두 시간씩 시간을 넘기기가 일쑤였다. 호랑이처럼 무섭기만 하던 처음의 교수님은 엄마처럼 때로는 푸근한 할머니처럼 바뀌어 그렇게 인자한 모습만 보여주셨다. 학년이 올라가 지도교수님이 바뀌어서도 교수님은 종종 연구실로 부르시며 나와 악기를 함께 타기도 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이른 나이에 악기를 시작한 덕분에 가끔 모진 말을 듣고 마음고생 하는 나를 그때마다 위로해 주셨고, 내 연주회가 끝나면 내 손을 잡고 “역시 내 제자가 최고야. 내 제자 연주 들었어요?” 하고 큰소리와 함께 일부러 더 엄지손가락을 추어올리기도 하셨다.

어느 날 학교를 그만두겠다며 러시아로 훌쩍 떠난다고 했을 때도 굳건히 잘 다녀오라고만 말씀하시던 교수님은 내가 학교에 다시 돌아와 이제 가야금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처음으로 당신의 슬픈 눈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이내 원래의 인자하신 모습으로 돌아와 밝게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다.

“너는 대쪽 같은 성격이 날 참 많이 닮았구나. 네 가슴속에도 불이 활활 타고 있지. 조금만 쉬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다시 돌아와. 너는 끝까지 내 제자야. 돌아오면 선생님이랑 삼겹살 먹으러 가자. 이건 약속이야.”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미국에서 신문으로 교수님의 부고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큰 산, 존경하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절반밖에 지키지 못한 채로 있다.

*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 작곡가

국립국악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86년 KBS로 데뷔하여 다수의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였다. 이후 K-pop 밴드와 한국 최초 컬래버를 했고, 한국, 일본, 유럽, 미국 등지에서 독주회와 초청 연주, 협연, 음악 강연회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